#읽고생각하기 - 수업과 자습
우리 눈에는 이상할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매우 기형적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수업시간과 자습시간 사이의 극심한 불균형 현상이다. 즉 수업시간은 절대 과잉인데 반해 자습시간은 절대 부족하다. 학생들의 일주일 시간표를 보면 온통 수업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실력과 성적을 의미하는 지갑은 늘 비어있는 꼴이다. 자습능력에 문제가 있어 실력과 성적이 부진한데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수업을 더 시켜서 이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이 탓에 수업시간과 자습시간의 불균형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구보다 학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분명하게 답을 해주기 바란다. 자녀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됐다고 해서 올바른 개념이나 지식을 얻었다고 볼 수 있는가? 선생님의 문제풀이를 보고 이해가 됐다고 해서 자녀들도 혼자서 그렇게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확실한 답을 하기 어려운 학부모들을 위해 비유를 들어 보겠다. 수업이 먹는 것이라면 자습은 배설되지 않고 흡수한 것이다. 수업이 먹을거리라면 자습은 소화능력을 의미한다. 감이 오시는지? 그럼 다시 한 번 묻는다. 소화능력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인다고 해서 과연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약해진 소화능력에 부담을 주어 더욱 상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물론 학부모들은 이렇게 항변할지 모른다. “자습능력이 있으면 왜 굳이 비싼 돈을 내고 또 수업을 듣게 하겠냐!”고. “혼자서 알아서 하지 못하니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운동부족으로 인해 나타난 비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이어트 약을 먹이는 것이 맞는지 되묻고 싶다. 약도 효과가 없으면 지방흡입술을 받아야 할까?
우리나라 교육의 기형적인 구조는 핵심적인 문제를 제대로 보고 바로 그 핵심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자꾸 핵심에서 빗나가는 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양질의 수업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정말 없다.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있고 피하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자습의 절대 부족 현상은 절대 피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문제에 속한다. 수업시간을 연장해서 효과를 봤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열등생과 우등생을 비교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습능력과 시간의 차이에서 성적 차이가 비롯된다는 점이다. 공부는 처음에 진도를 나갈 때는 수업효과가 강하게 발휘되지만 마무리 단계에서는 자습효과만이 유효하다. 공부는 지식을 쌓고 능력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다. 단박에 올바른 지식이 만들어지고 문제해결능력이 길러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반복과 연습이 필요한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실력을 완성하기 위해 더 해야 할 공부, 부족한 점들이 개인별로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아무리 족집게 도사라도 개인별로 모두 다른 지식의 결함과 사고의 오류를 알 도리가 없다. 자신밖에 모른다. 스스로 자습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내서 하나하나 정확하게 결함을 제거하고 오류를 바로잡아야 공부가 완성된다. 단언컨대 자습능력이 떨어지면 결코 공부를 완성할 수 없다.
자습능력 기르기에 필요한 조건을 살펴보자. 첫째는 ‘자각’이다. 수업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학습효과가 그에 비례하여 나타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지나친 수업은 과식한 것처럼 소화불량의 원인이 된다. 둘째는 ‘환경’이다. 자습에 적합한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 비록 학교 교실이 어수선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집보다는 훨씬 낫다. 최대한 학교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셋째는 ‘시간’이다. 오래 수업한 결과가 무효 처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표상에 수업효과를 증발을 막고 고정시키기 위한 자습이 계획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구경만 하고 선생님이 보여준 시범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학생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핀란드에서는 자습과 수업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수업시간이 곧 자습시간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강의 내용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참여한다. 선생님의 수업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서 정리한 다음에 혼자 연습을 하면서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비록 많은 차이가 있지만 핀란드 학생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보이는 적극적인 태도를 배우고 익히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자습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한 학생이 너무도 많다. 그들을 붙잡고 또 수업을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자습을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한다. 공부한 내용을 ‘이해가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기억이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연습이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도록 돕자. ‘그렇지 않을 것들’로 분류된 것들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한 다음에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대화할 필요가 있다. 사교육도 무작정 진도를 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학생들의 학습법을 발전시키는 용도로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과다한 수업으로 자습능력을 빼앗아놓고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학원에 보내 결국 수업 과잉상태로 몰아가는 것을 적반하장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걸까? 수업 과잉 그러니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공부로 인해 퇴화된 자습능력은 금방 살아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 준비과정을 충실하게 거치지 않고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하지만 한 번 자신만의 공부의 틀이 잡히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최고의 수업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서툴지만 혼자서 해보는 것이다. 수업과 자습이 서로 내용적으로 연결되고 적절한 비율을 유지할 때 기대한 성과가 나오는 것이 공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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